섬캠핑 덕적군
섬캠핑 덕적군도 넓디넓은 백사장에 인조물이라고는 우리가 친 텐트뿐이었다. 마치 백사장을 전세 낸 듯한 기분이었다. 바닷바람이 좀 거세기는 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바람에 펄럭이는 텐트가 운치를 더했다. 다들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이거지 이거.” 2박3일간의 덕적도(인천 옹진군) 섬 캠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토캠핑(장비를 차량에 싣고 이동하는 캠핑)과 백패킹(장비를 등에 지고 이동하는 캠핑)을 모두 체험해보기로 했다. 자동차에 캠핑 장비를 싣고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차도선(차량을 수송할 수 있는 선박)을 이용해 덕적도 진리항으로 입항했다. 캠핑 장비는 작고 가벼운 것이 크고 무거운 것보다 비싸다. 백패킹용 장비를 가졌다면 대부분 캠핑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하는 백패킹 말고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오토캠핑으로 섬 캠핑을 체험하기로 했다. ‘올댓캠핑’이라는 캠핑장 앱을 제작한 라스트캠핑사의 고재갑 대표와 직원들이 캠핑 장비를 가져와서 도와주었다.
ⓒ시사IN 이명익 서포리해수욕장 섬에서는 대부분 오토캠핑이 아닌 백패킹을 한다. 차량 도선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인천항에서 덕적도까지 7인승 카렌스 승용차의 도선료는 12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오토캠핑을 시도한 이유는 대부분의 가족형 캠핑이 오토캠핑이기 때문이다. 가족형 캠핑이 가능한지를 시험하기 위해 덕적도에서는 오토캠핑으로 1박을 했다(서포리해수욕장 방풍림 뒤편에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있다).
처음 계획은 거창했다.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려서 1박을 한 다음 공격조가 백패킹용 장비를 메고 소야도로 넘어가 뗏부루해수욕장에서 1박을 하고 나와서 함께 철수할 계획이었다. 섬에서 오토캠핑과 백패킹을 모두 경험해보자는 것이었다. 캠핑 초보에게는 다소 무리한 스케줄이었지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도전해보기로 했다.
직접 해보니 어느 정도 셈이 섰다. 차량을 이용해 두세 동을 칠 수 있는 텐트 장비를 옮긴다면 가족형 캠핑을 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전국적으로 차도선을 이용해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섬은 40곳 정도다. 이 섬들은 대부분 규모가 큰 편이다. 그리고 큰 섬에서는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마을버스가 운행하기는 하지만 운행 횟수가 적기 때문이다.
캠핑장 구축을 마치고 텐트에서 낮잠을 한숨 잤다. 바닷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텐트 안은 아늑했다. 텐트 안까지 오후의 햇살이 느껴졌다.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두 시간 정도 꿀잠을 잤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깨서 나가보니 외국인 연인이 와 있었다. 덕적도행 배에서 만난 프랑스인 알렉시스와 아거시 커플이었다. 덕적도에 내린 승객 중에 우리 팀은 유일한 캠핑족이었고 그들은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저녁에 함께 바비큐를 먹자고 초대했더니 찾아온 것이었다.
외국인에게 인기 있다더니 이유가 있었네
덕적도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매우 인기가 있는 섬 중의 하나다. 외국인들이 덕적도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미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섬이 주는 고요함을 좋아했다. 알렉시스와 아거시는 인터넷에서 덕적도에 관한 정보를 얻고 찾아왔다고 했다. 심지어 비수기라 숙소를 예약할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둘은 서포리해수욕장 뒤편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는데 주인아저씨가 영어에 능통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시사IN 이명익 덕적도 비조봉
백사장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기 때문에 해수욕장 뒤편에서 화로대를 설치했다. 밤바다를 배경으로 불이 켜진 텐트 세 동이 그림처럼 놓여 있었다. 백사장 반대편에 텐트 몇 동이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전혀 간섭받을 일이 없었다. ‘화이트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알렉시스가 여자친구 아거시를 위해 기타를 쳐주었지만 우리가 듣고 난 뒤의 소리는 바람이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을 자기란 쉽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난방을 할 수 없었다. 침낭과 에어 매트리스를 이용해야 했다. 바닷바람을 맞는 쪽에서 누워서 잤는데 바람에 밀린 텐트 벽에 얼굴이 눌릴 정도였다. 새벽에 공기가 차서 여러 번 깼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거셌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거울부터 보았다. 혹시나 입이 돌아가지 않았는지. 다행히 괜찮았다.
길거리에서 노숙을 한 것처럼 몸이 뻐근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몸이 좀 풀리자 아침 준비를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서포리해수욕장과 가까운 비조봉에 올랐다. 해발 292m에 불과한 산이었지만 해발 0m부터 오르는 것이라 만만치 않았다. 등산로도 가파른 편이었다. 숨이 차올 무렵 드디어 시야가 뚫렸다. 섬 전체를 조망하면서 멀고 가까운 섬을 두루 볼 수 있었다. 육지의 산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후 능선을 따라 비조봉을 올라 운조봉까지 가는 길은 도봉산의 포대능선처럼 울퉁불퉁했다. 바위를 타고 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위 사이로 낮은 소나무가 여기저기 자라는 모습이, 산수화에서 익히 보던 바로 그 바위산이었다. 바위산이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선 모습이 늠름하고 호방했다. 덕적도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등산 코스다. 아래쪽에는 삼림욕장도 조성되어 있었다. 섬 반대편에는 국수봉이 있는데 해발 314m로 비조봉보다 높았다.
ⓒ시사IN 이명익 능동 자갈마당
산을 내려와 마을을 지나 다시 서포리해수욕장으로 걸어와 늦은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중대 결정을 내렸다. 소야도 백패킹을 포기하고 덕적도에서 하루 더 숙박하기로 한 것이다. 덕적도 텐트 철수 시간과 배 시간 등을 고려하니 2박3일 동안 텐트만 치고 걸으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소야도는 백패킹 대신 답사만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대신 바람을 피하기 위해 덕적도의 텐트를 방풍림 뒤로 철수했다.
소야도 백패킹을 포기하고 확보한 시간으로 차를 타고 덕적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보통 1박2일로 오토캠핑을 가게 되면 가는 날은 텐트를 설치하고 식사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오는 날은 텐트를 걷고 장비를 정비하느라 지쳐서 캠핑장을 벗어나 바로 집으로 직행하곤 한다. 섬에서는 2박3일 정도로 일정을 잡아서 여유를 가지고 섬을 둘러볼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오고 가는 날 배로 이동하는 시간과 섬 안에서 돌아다니는 시간을 감안했을 때 1박2일 캠핑은 권하고 싶지 않다.
‘서해의 제주도’로 불리는 덕적도는 서포리해수욕장 외에도 여러 곳에 자연 해변이 있었다. 밧지름해변·이개해변·소재해변 등은 웬만한 해수욕장 못지않은 풍광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 외에도 크기가 작아서 ‘프라이빗 비치’처럼 활용할 수 있는 해변이 곳곳에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능동자갈마당이었다. 파도에 돌이 다듬어진 몽돌해수욕장이었는데 다른 곳보다 돌이 월등히 컸다. 사람 얼굴만 한 몽돌로 이뤄진 해수욕장이었다. 가장자리에는 우뚝한 바위들이 있었는데 파도가 반질반질하게 다듬어놓은 바닥과 달리 위쪽은 바람이 날카롭게 쪼아놓아 서로 대비되었다. 세파가 사람을 유연하게도 만들고 거칠게도 만드는 것처럼 바위가 파도와 바람에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통통배를 타고 소야도에도 들어가보았다. 소야도는 덕적도 바로 옆이라 배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소야도 뗏부루해수욕장 방풍림 뒤에 멋진 캠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잔디밭이어서 텐트를 치기 좋았다. 덕적도 해변에서 보았던 백패커들이 이쪽으로 옮아와서 텐트를 치고 담소 중이었다. 소야도 역시 덕적도로 가는 차도선이 들르는 곳이라 오토캠핑이 가능한데 한 은퇴자가 커다란 돔텐트를 설치하고 장기 캠핑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노 캠핑객의 텐트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캠핑 용품은 구리 접시였다. 장기 캠핑을 하면 음식이 상할 수 있는데 상한 음식이 구리 접시에 담기면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섬 캠핑객이 반드시 순례해야 할 ‘아볼타’ 블로그
덕적도에 들어오는 차도선은 소야도 외에 자월도·승봉도·이작도를 들른다. 일종의 완행 여객선인 셈이다. 차도선을 타고 들어오는 동안 자월도·승봉도·이작도와 덕적도에서 각각 1박씩을 하는 4박5일의 캠핑 일정을 구상해보았는데 직접 캠핑을 해보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20대라면 모를까, 40대에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차도선이 들르는 자월도·승봉도·이작도(대이작도, 소이작도)는 덕적도와 같은 방식으로 오토캠핑이 가능한 곳이다. 특히 승봉도가 인기가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아 풍경이 다르다. 다른 섬 주민들은 대부분 텃밭 수준의 밭농사만 짓지만 승봉도 주민들은 논농사도 하기 때문에 늦봄에 가면 논에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산뜻한 벽화까지 그려놓아서 캠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덕적군도에 속하는 문갑도·굴업도·백아도·울도와 지도 역시 덕적도 진리항에서 출발하는 차도선이 순회하는 곳이라 ‘이론적으로’는 오토캠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인천항에서 덕적도까지 차를 옮기는 비용과 덕적도에서 이 섬으로 차를 옮기는 비용이 이중으로 들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섬 안에 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굳이 차로 갈 필요는 없다. 덕적군도의 섬들은 백패커에게 인기가 좋은데, 특히 굴업도는 섬 캠핑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굴업도 개머리해변은 백패커들이 매우 선호하는 캠핑 장소 중 한 곳이다.
섬 캠핑에 대한 정보는 여러 곳에서 얻을 수 있다. ‘아볼타’라는 이름을 쓰는 오지 캠핑 전문가의 블로그(http://avoltath.blog.me)가 큰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섬 캠핑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블로거는 충남 보령 대천항에서 들어갈 수 있는 외연도를 가장 캠핑하기 좋은 섬으로 꼽는다. 외연도는 풍광이 좋은 곳에 나무 데크가 깔려 있어 텐트 치기가 용이하다.
섬 캠핑을 갈 때 가장 환영받는 사람은 낚시꾼이다. 다른 일행들이 섬을 둘러보는 동안 일행 중 한 명이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로 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여 먹는 것이 섬 캠핑의 최고 호사다. 안타깝게도 이번 캠핑에는 낚시꾼이 없어 회를 사다 먹어야 했다. 낚시꾼이 없으면 갯벌에서 조개를 줍거나 개불을 캐는 방법도 있다. 인구가 적어 거두는 사람이 별로 없어 쉽게 구할 수 있다. 섬 주민이 파는 해산물을 사서 요리해 먹는 것도 재미있다. 이번 캠핑에서는 덕적도에서 나는 석화를 사서 굴밥을 지어 먹었다. 그렇게 자연과 가까워지고 자연을 배워가는 것이 바로 섬 캠핑의 매력이다.